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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엘리어트 - 황무지

by 소행성3B17 2018.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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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



  1. 죽은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불모의 땅에서

  라일락을 꽃 피게 하고, 추억과

  정욕을 뒤섞어,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어나게 한다.

  겨울이 차라리 따스했었나니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빼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워줬거니.

  여름은 난데없이 쉬타른베르거 호수를 건너

  묻어 오는 소나기로 덮쳐온지라, 우리는 회랑에서 머물렀다가

  햇빛 속을 공원으로 가서

  커피를 마시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소.

  나는 러시안인이 아니라 리투아니아 출신의 순수한 독일인이오.

  어렸을 때는 사촌인 대공(大公) 집에 있었소.

  사촌이 날 썰매에 태웠기 때문에

  아주 무서웠어요. 사촌이 말하기를 마리,

  마리 꼭 붙들어. 그리고 함께 미끄러져 내렸지요.

  산 속에 있으면 느긋해지지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에는 남쪽에 가지요.


  움켜쥔 것은 무슨 뿌리인가, 이 황무지에

  어떤 가지가 자라나는가? 사람의 아들이여,

  너는 말도 추측도 할 수 없다. 너는 그저

  부서진 우상 더미밖에 모르기에, 거기엔 해가 비치고

  마른 나무는 그늘을 만들지 않고, 귀뚜라미의 위로는 없으며

  마른 돌에는 물소리조차 없다. 다만

  이 붉은 바위 밑에 그늘이 있을 뿐

  ( 이 붉은 바위 그늘에 오라 )

  그리하면 나는 아침에 네 등 뒤로 좇아오는 네 그림자나

  저녁에 너를 마중하러 일어서는 네 그림자와

  다른 그 무엇을 보여 주리라.

  한 줌 티끌이 지닌 공포를 보여 주리라.

     신선한 바람은

     고향 향해 부는데

     내 아일랜드의 아들아

     너 어디 있느냐?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받은 지 한 해가 되었군요.

  모두들 히아신스 아가씨라 부르더군요."

  ― 그러나 우리는 늦게 히아신스 정원에서 돌아왔을 때

  네 팔은 꽃으로 가득했고,  머리는 젖어 있었으며, 나로 말하면

  말할 수도 없고, 눈은 안보여서,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빛의 중심, 침묵과 마주하고서.

  바다는 황량하고 쓸쓸하여라.


  소소트리스 부인은 유명한 천리안,

  심한 감기에 걸려 있는데도

  유럽 제일의 점쟁이란 평판으로

  사악한 트럼프 한 벌을 가지고 있었다. 자, 이것이

  당신의 카드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물에 바져

  죽은 피니키아 선원이요

  ( 보세요, 이 진주가 그의 눈이었지요! )

  이것이 벨라돈나, 바위 사이의 꽃,

  상황을 말해 주는 여자요.

  이것이 애꾸눈 상인, 그리고 이 카드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대, 그가 등에 지고 있는 것으로서

  내가 보아서는 안 되게 되어 있지요

  목 매달린 남자가 안 보이네요. 물에 빠져 죽을

  상이 나와 있군요.

  원을 그리면 돌고 있는 무리가 보입니다.

  실례했습니다. 에퀴턴 부인을 만나시거든

  천궁도는 내가 가져간다고 전해 주셔요.

  요즘에는 아주 조심해야만 해요.


  환상의 도시,

  겨울 새벽의 갈색 안개 아래로

  많은 무리가 런던 다리 위를 흘러가고 있었다.

  죽음이 이렇듯 많은 사람을 멸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따금 짧은 한숨을 내쉬면

  제각기 발 끝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리는 흐르듯 언덕을 올라가서, 킹 윌리엄 거리를 내려가

  아홉시의 마지막 소리를 치는 쪽으로 향해 간다.

  거기서 나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스테트슨!"

  "자네하고는 밀라이 해전 때 함께 있었지!

  지난해 자네가 마당에 심은 시체는

  싹 트기 시작했나? 금년에는 꽃이 필 듯하던가?

  아니면 갑작스런 서리로 묘판을 버리게 되었나?

  오오 개를 멀리 하게, 그 녀석은 인간의 친구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발톱으로 파헤치고 말 거야!

  그대! 위선스런 독자! ― 나의 동류, 나의 형제여!"

  









  ※ 엘리어트의 '황무지'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의 황폐를 유럽 사람의 정신적인 황폐에 의해서 조명하려 하는 강렬한 이미지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자의 시체에서 어떤 문영의 싹이 트기 시작하고 어떤 꽃이 필것인지는 유럽 문명의 과거의 전통을 지켜보고 절망하면서 움직이는 인간들의 회회나 유희 또는 비지니스나 전설 그리고 미신을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엘리어트는 이 '황무지' 안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역설적으로 표현된 황무지에서는 삶이 곧 죽음이다. 바꾸어 말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한 삶인 것이다. 그리고 이 황무지는 엘리어트에게 있어서는 종교의 기둥을 잃고 만 현대 일반의 상황이며, 또한 제1차 세계대전 뒤의 황무지에 의해 상징되어 있는 것이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

  

  엘리어트는 20세기 전반의 영 · 미시의 방향을 결정적인 것으로 만든 시인 · 극작가 · 비평가이다. 미국 미주리주의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하버드, 소르본, 옥스퍼드 등의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학생 시절부터 전통적인 시를 썼으나 아더시먼즈의 '문학에서의 상징주의 운동을 읽고,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들, 특히 베를렌, 라포르그, 콜비에르 등의 알게 되었고, 또한 단테, 보들레르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때까지의 취향을 뒤집는듯한 혁신적인 시를 발표하게 되었다.

  1911년 'J.알프레드 프루프로그의 연가'로 충격적인 등장을 한 이래로 계속 제일선에서 서서, 그의 발언은 끊임없는 문제를 던지면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 교회가 힘을 지니는 이상 사회를 꿈꾸면서 '황무지'에서 현대의 지옥을 펼쳐 보았다.

  런던에 정주하면서 작업을 해온 이 미국의 시인은 1928년에 영국에 귀화하여 '종교에 있어서는 역국국교회, 정치에 있어서는 왕당파, 문학에 있어서는 고전파'라는 유명한 선언을 피력하였다. 우리는 그의 시를 가리켜 주지시란 말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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