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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이상화 - 나의 침실로

by 소행성3B17 201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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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실로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서만 있어라-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寢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런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무나. 사원(寺院)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 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느니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무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復活)의 동굴(洞窟)임을 네야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백조' 3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상화의 18세 때의 작품이라고 전한다. 시의 경향은 낭만주의가 주조가 된 주정시이며 애정시이다. 표현상에서도 간결한 지적 형식을 무시하고 2행씩 짝을 지어 도도한 감정을 그대로 토로하고 있으며 관념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시어를 많이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원문을 보면 '가장 아름답고 오랜 것은 오직 꿈 속에서만 있어라.'는 에피그램(epigram)을 부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이 시가 단순한 애욕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관능의 진실한 모습에서 애욕의 의미 부여를 주제로 하고 있다는 뜻이 되며, 발랄한 애정을 소재로 아름답고도 영원한 꿈 = 미 = 안식처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제는 영원한 삶에의 향수이다.




이상화(李相和 1901~1943)

 호는 상화(尙火, 想華), 또는 무량(無量)·백아(白啞). 경북 대구 출생. 겅성중앙학교 3년 수료. 1922년 '백조' 동인이 되어 시 '말세의 희탄(1922)', '단조(單調)', '가을의 풍경(1922)', '나의 침실로(1923)', '이중사망(1923)' 등을 발표함. 도쿄, 아테네, 프랑스에서 불어 및 불문학을 공부. 귀국 후 2년 동안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개벽'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함. 1927년 대구에 끌여 왔으나 수차에 걸쳐 가택 수색을 당했고, 이어 의열단(義烈團)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 이후 수차의 옥고를 겪었으며 위암으로 사망함. 유고시 16편이 백기만에 의해서 시집 '상화와 고월(1956)'에 수록됨. 대구 달성공원에서 비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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