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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랭보 - 모음(母音) 모음(母音) A는 흑, E는 백, I는 홍, U는 녹, O는 남색, 모음이여 네 잠재의 탄생을 언젠가는 말하리라. A(아). 악취 냄새 나는 돌레를 소리내어 나르는 눈부신 파리의 털 섞인 검은 코르셋. 그늘진 항구, E(으), 안개와 천막의 백색. 거만한 얼음의 창날, 하이얀 왕자, 꽃 모습의 떨림. I(이), 주홍색,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련가. U(우), 천체의 주기, 한바다의 푸른 요람, 가축들 흩어져 있는 목장의 평화, 연금술을 연구하는 넓은 이마에 그어지는 잔주름살. O(오), 기괴한 날카로운 비명이 찬 나팔소리려니, 온 누리와 천사들을 꿰뚫는 침목. 오오, 오메가! 신의 시선의 보라빛 광선. ※ 랭보는 이 시에서 음향과 색채와 향기 사이의 이론 .. 2018. 1. 22.
[시] 랭보 -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골짜기에서 잠자는 사람 푸른 잎의 구멍이다. 한 갈래 시내가 답답스럽게 풀잎이 은빛 조작을 걸면서 노래하고 있다. 태양이 거만한 산의 어깨로부터 빛나고 있다. 광선이 방울짓는 작은 골짜기다. 젊은 병사 한 명이 모자도 없이 입을 벌린 채 싹트기 시작한 푸른 풀싹에 목덜미를 담근 채 잠자고 있다. 구름 아래 있는 풀밭에 누워 광선이 쏟아지는 초록색 침대에 창백한 모습으로 민들레 떨기 속에 발을 넣고 자고 있다. 병든 아이가 미소짓듯 웃으면서 꿈꾸고 있다. 자연이여,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 주어라, 추워 보이는 그를. 초목의 향내도 그의 코를 간질이지 못한다. 햇빛 속에서 고요한 가슴에 두 손을 올려 놓고 그는 잠잔다. 오른쪽 옆구리에 두 개의 빨간 구멍을 달고서. ※ 이 시에서 랭보는 보불 전쟁 당시의 인.. 2018. 1. 22.
[시] 디킨슨 - 귀뚜라미가 울고 귀뚜라미가 울고 해는 지고 귀뚜라미는 운다. 일꾼들은 한 바늘씩 하루 위에 실마리를 맺었다. 얕은 풀에는 이술이 맺히고 황혼의 나그네처럼 모자를 정중히 한쪽 손에 들고서 자고 가려는지 발을 멈췄다. 끝없는 어둠이 이웃 사람처럼 다가왔다. 얼굴도 이름도 없는 지혜가 오고, 동서반구의 그림 같은 평화가 오고, 그리고 밤이 되었다. ※ 디킨슨의 시에는 죽음, 영원, 고통 등을 다룬 것이 많다. 정확한 비유와 선면항 이미지는 실로 효과적이서 에이미 로웰은 그녀를 가리켜 이미지스트의 선구자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디킨슨(Emily Dickinson, 1839~1886)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때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시를 쓰고 있던 여루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에밀리 디킨슨이다. 아머스트 마을에 살면서 그 근.. 2018. 1. 22.
[시] 디킨슨 - 황야를 본 적 없어도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황야를 본 적 없어도, 나 아직 바다를 본 적 없어도, 히스 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파도가 어떤 건지 알고 있다오. 나 아직 하나님과 말 못 했어도, 저 하늘 나라에 간 적 없어도, 지도책을 펴 놓고 보는 것처럼, 그 곳을 자세하게 알고 있다. ※ 디킨슨은 오늘날에는 휘트먼과 나란히 일컬어지는 미국 최대의 여류 시인이지만, 생전에는 고향의 이름을 따서 '아머스트의 수녀'로 불려지며 은밀히 시를 썼다. 생전에 인쇄돈 것은 단 2편뿐이고, 1,700편이 넘는 시는 그가 죽은 뒤 책상 서랍에서 발견되어 간행되게 되었다. 디킨슨(Emily Dickinson, 1839~1886) 남북전쟁이 치열하던 때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조용히 시를 쓰고 있던 여루시인이 있었으니 바로 에밀.. 2018. 1. 22.
[시] 보들레르 - 이방인 이방인 ─ 너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 수수께끼와 같은 사람아 말하여 보라. 너의 아버지냐, 또는 형제 자매이냐? ─ 내게는 부모도, 형제 자매도 있지 않다. ─ 그러면 너의 친구냐? ─ 지금 너는 뜻조차 알 수 없는 어휘를 쓰고 있다. ─ 그러면 너의 조국이냐? ─ 그것이 어느 위도에 자리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 그러면 아름다운 여인이냐? ─ 아아, 만일 불사의 여신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도 있으련만. ─ 그러면 돈이냐? ─ 나는 그서을 가장 싫어한다. 마치 네가 신을 미워하고 있는 것처럼. ─ 그러면 너는 무엇을 사랑하느냐? 세상에서도 보기 드문 에트랑제여! ─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저 부산나게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 2018. 1. 19.
[시] 보들레르 - 죽음의 기쁨 죽음의 기쁨 달팽이 기어다니는 진흑 당에 내 손수 깊은 구덩이를 파리라. 거기 내 늙은 뼈를 편히 쉬게 묻어 물 속의 상어처럼 망각 속에 잠들리라. 나는 유서를 꺼리고 무덤을 미워한다. 죽어 부질없이 남의 눈물을 바라느니보다 내 차라리 산채로 까마귀를 불러 더러운 뼈 마디를 쪼아먹게 하리라. 오, 구더기! 눈도 귀도 없는 어둠의 빛이여. 너 위해 부패의 아들, 방탕의 철학자. 기뻐할 불량배의 사자는 오도다. 내 송장에 주저 말고 파고 들어 죽음 속에 죽은, 넋없는 썩은 살 속에서 구더기여, 내게 물어라. 여태 괴로움이 남아 잇는가고. ※ 세기말의 이른바 데카당들은 "영혼의 고뇌"를 노래 했는데, 이 시는 그 중의 한 대표작이다. 이 시를 쓸 무렵의 작자는 "살아 있다는 것은 말뿐이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 201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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