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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주요한 - 불놀이

by 소행성3B17 2016.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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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놀이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西便) 하늘에 외로운 강물 위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 소리…….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

 

  아아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위에서 나려다 보니 물 냄새 모래 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며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임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 버릴까. 이 설움 살라 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 시원히 오늘 밤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 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을 차리니, 우구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아아, 좀 더 강렬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맥히는 불꽃의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

 

  사월달 따스한 바람이 강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위에, 허어옇게 흐느끼는 사람 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봄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 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고, 물결치는 뱃속에는 조름 오는 '리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 소리, 달아 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어린 기생의 노래, 뜻밖에 정태(情態)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 밑창에 맥없이 누우면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間斷)없는 장구 소리에 겨운 남자들은 때때로 불리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득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위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삐걱거리는 배 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

 

  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을 저어 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 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의 어두운 가슴 속도 너에게는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거늘
  오오, 다만 네 확실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 

  오오, 사로라, 사로라! 오늘 밤! 너의 발간 횃불을, 발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발간 눈물을…….







  ※ 1919년 2월 '창조' 창간호에 실린 작품으로서 흔히 말하는 한국의 근대 상징시의 효시로 알려진 주요한의 대표작이다. 따라서 이 시의 국문학사적 위치는 한국 최초의 자유시라는 시사적(詩史的) 푱가를 받는 시다.

  이 시의 배경은 4월 초파일 해질녘 사람들이 불놀이를 구경하러 몰려가고 있다. 이 광경을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라는 한 청년. 그는 실연에 가슴이 아픈 쳥년이라고 해도 좋고 우국 청년이라고 해도 좋다. 아무튼 그 청년은 이 광경을 보고 울분도 하고 한편으로는 삶의 의욕을 느끼기도 한다.

  이 시의 작각는 현실을 부정했다가 다시 긍정하고 확실한 의미를 발견하고 적극적인 삶을 외친 것이다. 이 시의 경향은 상징적, 서정적이며 5연으로 구성된 산문체의 자유시다. 이 시의 주제는 사랑 또는 이상이나 조국을 잃은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정열이다.




주요한(朱耀翰 1900~1982)

  호는 송아(頌兒). 평양 출생, 도쿄 메이지 학원(明治學院) 중등부와 제일고교를 거쳐 상하기 호강대학(滬江大學) 졸업. 졸업후 귀국, 동아일보 편집국장 · 논설위원, 조선일보 편집국장 · 전무 · 취체역 · 민의원 · 상공부 및 부흥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중학 때부터 시를 발표하여 기동인 함께 최초의 순문예 동인지 '창조(1919)'를 발간하면서 신시의 선구자가 되었음. 김억과 함께 신체시에 종지부를 찍고, 한국시의 절정을 이룬 대표적 시인.

  시집에 '아름다운 새벽(1924)', '삼인 시가집(공저; 1924)', 시조집에 '복사꽃(19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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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절

  〈불놀이〉를 지어 한국근대시 형성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겼고 아호는 송아(頌兒)이며, '송아지'와 '목신'(牧神), 주락양(朱落陽), 벌꽃, 낙양(落陽)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는 말만 들으면 문학가로만 여겨지겠지만, 주요한은 변절한 친일파이다. 일제 강점기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임시 정부 기관지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었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전후로 변절, 일제 전시체제때 총독부의 내선일체 체제에 순응하여 적극적인 협력활동을 한 친일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2015년 8월 15일 부천시청 광장에 게시한 선전물에서 주요한을 가리켜 "죽음과 삶을 초월한 황국정신"이라고 했다. 그 근거로 주요한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가실 때에는 빨간 댕기를 드리겠어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댕기(국민문학 1941년), "나는 간다. 만세를 부르고 천황폐하 만세를 목껏 부르고, 대륙의 풀밭에 피를 뿌리고 너보다 앞서서 나는 간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지원병 이인석에게 줌(1941년 3월호 신시대)라는 글을 써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애국'이라며 선전했다.


  친일 미청산

  해방 이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고, 제2공화국 장면 내각에서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본관은 신안(新安)이다.



@ 일제강점기, 이후 생애


  일제 강점기 후반

  사회 활동과 전향

  그는 꾸준히 안창호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안창호를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안창호가 수양동우회를 결성하자 가입하여 회원이 되었다. 1930년대부터는 화신산업 취체역 등 기업 활동을 하면서 시작이 뜸해졌고, 광복 후에는 문단 활동을 접고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으로만 활동했다.

  1930년대 후반 화신상회 이사로 선출되었다.


  전시체제기 활동

  1942년 2월 18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주요한의 시문.

  일제강점기 시기 동안 주요한은 언론인으로 지내면서 '합법적인 공간'하에 실력양성운동과 사회계몽운동 발전에 힘써왔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지식인들이 대거 체포되었을 때 주요한도 검거되었고, 이듬해 이광수, 전영택, 현제명, 홍난파 등과 함께 전향하였다. 이후 전시체제기 동안 총독부의 체제에 순응하면서 적극적인 협력활동을 하게 된다. 조선문인보국회, 조선임전보국단, 조선언론보국회 등 여러 친일 단체에 가담해 징병제를 선전하는 등 태평양 전쟁 수행에 적극 협력했다. 창씨개명한 이름도 일본의 팔굉일우(八紘一宇) 이념에서 따온 것이다.

  1944년 종로의 인사들이 학도병을 독려하기 위해 조직한 종로익찬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 1945년 초 조선언론보국회에 가입하였다.


  광복이후 정치 활동

  정계 입문 초기

  광복 후 흥사단에 관계하여 활동하였으며 1945년 9월 한민당이 창당되자 그에게 영입 제의가 들어왔으나 거절하였다. 그 해 조선상공회의소(대한상공회의소의 전신) 특별위원에 선출되었다. 그 뒤 대한무역협회 회장(1948)을 지냈고,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에 피선되었으며 1954년 호헌동지회에 참여한 뒤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1958년 5월 서울 중구에서 대한국민당의 윤치영을 누르고 민의원에 당선되었으며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뒤 그해 5월의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되었다. 8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제2공화국 내각에 장면에 의해 발탁되어 부흥부 장관, 상공부 장관으로 입각했으며, 1961년 초 경제과학심의회 위원에 피선되었다.


  생 후반

  1961년 5월 5·16 군사정변으로 장면 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공직을 사퇴하고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대한일보》 사장과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이후 정치정화법에 걸렸다가 1963년 정치정화법에서 해금되면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나 박순천과 장면, 정일형 등의 재건 민주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그가 군사정권에 타협한 것이라며 비난을 가했다.

  1964년 경제과학심의회의 위원, 1965년부터 73년까지 대한일보사 회장을 지냈다. 이후 문필 활동에 전력하다가 1979년에 사망했다.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 벽제면에 안장되었다.


  사후

  〈불놀이〉는 한국 근대 자유시의 효시로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작품이며, 주요한은 김억과 함께 초기 시단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낭만적인 찬송가 작사도 하여 한국교회 음악발전에 공헌하였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어 있으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와카 형식으로 쓴 일본어 시집 《손에 손을(일본어: 手に手を)》(1943) 등 총 43편의 친일 작품명이 공개되어,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선정된 문인 가운데 이광수 다음으로 편수가 많았다. 1979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

==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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