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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유치환 - 바위

by 소행성3B17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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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 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1947년 발간된 '생명의 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전연 12행의 자유시다. 다른 시인들의 시처럼 바위를 구상적으로 형상화한 거시 아니라 바위를 '허무의 의지'의 상징적 사물로 하여 자신의 허무의식을 바위와 같은 굳은 의지로 극복해 보겠다는 눈물겨운 다짐을 보인 이 시의 주제는 허무의식의 극복이라 하겠다.



  유치환(柳致環 1908~1967)

  호는 청마(靑馬). 경남 충무 출생. 동래고보를 거쳐 연희전문문과 1년 중퇴.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靜寂)'으로 문단에 데뷔. 한때 평양에서 사진업을 하기도 하고, 만주를 방랑하기도 했으나 해방 후 경주 고교, 대구 여고, 경남 여고 등에서 교장, 예술원 회원 역임. 서울 특별시 문화상, 자유 문학상 등 수상. 시집에 '청마시초(1951)', '생명의 선(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 '보병과 더불어(1951)', '청마시집(1954)', '제9 시집(1966)',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1966)' 등 14권에 달하는 시집이 있음. 기타 자작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1959)'의 수필집이 있다. 경북 불국사, 부산시 에덴 공원에 시비가 건립되었다.



  친일 행적

  1942년 2월 6일자 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이 농후한 산문이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에 의해 발견되어 친일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위키백과-


  문제가 있다면 친일파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는 것. 특히 1942년 2월 6일 자 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 산문이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에 의해 발견되면서 기존의 애국 시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그나마 형 유치진이 백범 김구 선생이 이미 당대에 인증한 거물급 친일파인지라 상대적으로 묻히는 편. 재고의 여지가 없는 친일파인 형과는 달리 유치환 본인은 매우 전형적인, 친일과 애국적 행보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변절자 혹은 나약한 인텔리라고 보는 것이 가장 객관적일 것이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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