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靑葡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1939년 8월 '문장'지에 발표된 육사의 대표적 서정시로 알려진 작품이다. 황토색 짙은 시어로 순수성과 시적 인식이 뛰어나면서도, 민족의 수난을 채색하여 끈질긴 민족의 희망을 시화한 이 작품의 주제는 신선산 동경과 기다림이라 하겠다.
이육사 (李陸史 1904~1944)
본명은 원록(原祿). 통명(通名)은 활(活). 경북 안동 출생. 북경군과 학교를 거쳐, 북경 대학 사회학과 졸업. 귀국 후 최초의 '황혼'을 '신조선(1933)'에 발표하여 문다에 데뷔. 이어 신헉호, 윤공강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34편의 시를 남겼음. 21세 때 형 원기, 아우 원유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의사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형제들과 함께 3년간 옥고를 치름. 그 때 감방 번호가 264호였으므로, 호를 육사(陸史)로 불렀음. 이후 대소사건이 있을 때마다 투옥되길 무려 17회, 끝내 북경에서 병졸함. 유고 시집에 '육사시집'이 간행되었고 다시 '청포도(1964)', '광야(1971)'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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