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 이 시는 1939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훗날 그의 시집 '슬픈목가'에 전재된 이 작품은 4연의 자유시로 일제의 치하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는 민족사의 시대적 상황은 이 목가시인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는 '촛불'의 세계에서 즐겨 부르던 '어머니'도 잃어버리고 암울한 절망 속에 빠져야만 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과거에 즐겨 쓰던 현란한 수식어도 보이지 않으며 예각적인 까칠한 서술이 전편을 덮고 있는 주정적(主情的)인 작품이다.
그래서 서정성이 빈약한 반면 의지만이 드러난 저항시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안식을 줄 수 있는 전원에의 동경이라 하겠다.
신석정(辛夕汀 1907~1974)
본명은 석정(錫正). 전북 부안 출생. 중앙 불교 전문강원(專門講院)에서 수학. 광복 후 전주 고교, 전주 상고 등에서 교펀을 잡았고, 영생대(永生大), 전북대 등에 출강했음. '시문학(1930)' 3호부터 동인으로 참가하여 문단에 데뷔. 이후 전원적, 목가적인 많은 시를 발표하여 김동명, 김상용 등과 함께 3대 전원시인 중 제일인자가 됨. 시인 장만영은 그의 동서이며 시조시인 최승범은 사위로 시인 가족이다.
시집에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冰河 1956)', '산의서곡(序曲 1967)', '대바람 소리(1970)' 등이 있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한기옥 - 지는 꽃을 보며 (0) | 2016.11.21 |
---|---|
[시] 이동윤 - 초우(草雨) (0) | 2016.11.21 |
[시] 신석정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0) | 2016.11.16 |
[시] 신석정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0) | 2016.11.16 |
[시] 김광섭 - 시인 (0) | 2016.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