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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한용운 - 님의 침묵

by 소행성3B17 201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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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 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도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대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런, 이별은 쓸데없는 누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난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만해의 시 88편이 실린 '님의 침묵'은 표제가 된 작품으로, 제목이 말해주듯이 '님이 침묵하는 시대'의 '님'을 잃은 슬픔과 새로운 신념을 노해한 서정시다. 그는 식민지 시대의 조국을 '님이 침묵하는 시대'로 보았다.

 작가는 그 '님'을 조국, 중생, 진리로 표상되는 '절대자'로 포착, 명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종교적, 민족적 사상과 전통에 뿌리박은 고도의 품격을 부여하였다.

 시의 형식으로는 전연으로 된 산문적 자유시며, 경향은 종교적, 명상적, 신비적이다. 특히 표현상에서는 산문적 표현이면서도 내재율을 살린 리듬 감각에 치중하고 있으며, 불교적 사상을 철학적 언어로 사용하지 않고 부드러운 연가조로 표현하여 외형미와 내용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의 주제는 절대자에 대한 연모의 정, 또는 조국애와 불도 정진에의 의지와 신념이라 하겠다.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호는 만해(萬海 · 卐海). 충남 홍성(洪城)출생. 18세 때 동학에 가담했으며, 3.1운동 때 미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23세 때 입산하여 중이 됨. 1919년 옥중에서 쓴 '조선 독립의 서'는 후세 남긴 겨레의 대문장임. 저서에 '불교유신론(1990)', '불교 대전', '십현담주해'가 있고, 시집 '님의 침묵(1926)' 장편소설에 '흑풍(1935)', '후회(1936)', 번역서에 '삼국지'가 있음. 후에 만해의 새로운 시 17편, 시조 30편과 중편소설 '죽음'이 발견되어, 그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그의 전저작(全著作)은 '한용운 전집(1973)' 전 6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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