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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by 소행성3B17 2016.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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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에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네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교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저연 7행으로 된 산문시로, 범신론적 우주관과 동양주의적 정적(靜的) 자태가 전연에 흐르고 있으며, 시인이 추구하는 구도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시의 경향은  '님의  침묵'과 같이 신비적, 종교적, 명상적이며,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산문적 표현이면서도 내재율을 살린 리듬 감각에 치중하고 있으며 '입니까?' 하는 설의법을 써서 함축성 있는 형식미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외면에 나타난 것을 보면 자연을 제재로 하여 단순한 자연을 노래한 것 같지만 가만히 음미해 보면, 자연을 노래한 시만은 결코 아니고 '누구'에 대한 해석 여하에 따라 '자연' 자체일 수도 있고, 조국, 절대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주제는 절대자에 대한 구도적 염원이라 하겠다.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

호는 만해(萬海 · 卐海). 충남 홍성(洪城)출생. 18세 때 동학에 가담했으며, 3.1운동 때 미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23세 때 입산하여 중이 됨. 1919년 옥중에서 쓴 '조선 독립의 서'는 후세 남긴 겨레의 대문장임. 저서에 '불교유신론(1990)', '불교 대전', '십현담주해'가 있고, 시집 '님의 침묵(1926)' 장편소설에 '흑풍(1935)', '후회(1936)', 번역서에 '삼국지'가 있음. 후에 만해의 새로운 시 17편, 시조 30편과 중편소설 '죽음'이 발견되어, 그의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그의 전저작(全著作)은 '한용운 전집(1973)' 전 6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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