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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윤동주 - 참회록(懺悔錄)

by 소행성3B17 2017.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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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 이 시를 쓴 날짜는 1942.1.24로 부기되어 있다. 그러니까 국내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다. 시의 경향은 저항적, 상징적이며, 5연으로 된 이 시는 만24년 1개월의 자신의 삶을 멸망된 어느 왕저의 유물로 비유하면서 그의 욕된 삶을 뉘우치고 고백한 '참회록이다. 작품의 주제는 식민지하의 욕된 자신의 회한이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아명(兒名)은 해환(海換). 북간도 동명촌 출생.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 일본 리쿄오 대학 및 도오지사 대학에서 영문학 수학. 1943년 하기 방학의 귀국직전 독립 운동가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29세로 옥사. 중학 재학시 간도 연길에서 발행했던 '카톨릭 소년'에 수 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일찍이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음. 그가 죽은 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이 발간되었으며,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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