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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균6

[시] 김광균 - 언덕 언 덕 심심할 때면 날 저무는 언덕에 올라 어두워 오는 하늘을 향해 나발을 불었다. 발 밑에는 자욱한 안개 속에 학교의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동네 앞에 서 있는 고목 위엔 저녁 까치들이 짖고 있었다. 저녁 별이 하나 둘 늘어 갈 때면. 우리들은 나발을 어깨에 메고. 휘파람 불며 언덕을 내려 왔다. 등 뒤엔 컴컴한 떡갈나무 수풀에 바람이 울고. 길가에 싹트는 어린 풀들이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 이미지즘을 이 땅에 토착화 시킴으로써 모더니즘의 기수라 불린 작가의 시는 회화적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언덕'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감미롭게 회상한 동시이다. 김광균(金光均 1914~1993) 실업가. 경기도 개성 출생. 송도상고 졸업. 이후 회사에 취직, 생업에 종사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함. 시 '야경차.. 2016. 12. 15.
[시] 김광균 - 외인촌 외인촌 하얀 모색(暮色) 속에 피어 있는 산협촌(山峽村)의 고독한 그림 속으로 파아란 역등(驛燈)을 달은 마차(馬車)가 한 대 잠기어 가고, 바다를 향한 산마룻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電信柱) 우엔 지나가던 구름이 하나 새빨간 노을에 젖어 있었다. 바람에 불리우는 작은 집들이 창을 내리고, 갈대밭에 묻히인 돌다리 아래선 작은 시내가 물방울을 굴리고 안개 자욱한 화원지의 벤치 우엔 한낮에 소녀들이 남기고 간 가벼운 웃음과 시들은 꽃다발이 흩어져 있다. 외인 묘지(墓地)의 어두운 수풀 뒤엔 밤새도록 가느란 별빛이 내리고, 공백한 하늘에 걸려 있는 촌락(村落)의 시계(時計)가 여윈 손길을 저어 열시를 가리키면 날카로운 고탑(古塔)같이 언덕 우에 솟아 있는 퇴색한 성교당(聖敎堂)의 지붕 우에선 분수(噴水).. 2016. 12. 15.
[시] 김광균 - 데생(뎃상) 데 생 1 향료(香料)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高架線) 위에 밤이 켜진다. 2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 이 시는 1939년 7월 9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주지적, 영상적이며 2연으로 짜여진 회화시다. 이 시는 '데생(뎃상)' 이라는 제목 그대로 사물에 대한 소며를 전개한 소품으로서 성공한 작품이다. 지성과 이미지를 중시하는 모더니즘 경향에 의거, 감정이 지성에 의하여 억제되고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며, 회화적 수법에 의하여 산뜻한 감각을 살린 이 시의 주제는 어둠을 맞는 고독감이라 하겠다. 김광균(金光均 1914~1993) 실업가. 경기도 개성 출생... 2016. 12. 15.
[시] 김광균 - 추일 서정(秋日抒情) 추일 서정(秋日抒情)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帳幕) 저 쪽에 고독한 반원(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 ※ 이 시의 경향은 주지적, 영상적 이미지즘이며 전연으로 구성된 회화시다.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시각적 이미지를.. 2016. 12. 15.
[시] 김광균 - 와사등(瓦斯燈) 와사등(瓦斯燈)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홀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夜景)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思念)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은 거리의 아우성 소리 까닭도 없이 눈물겹구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 이 시는 1938년 6월 3일 조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으로, 5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이 시는 희망도 이상도 상실한 현대인, 특히 현대 지성의 아픈 고민이 표백된 모더니즘.. 2016. 12. 15.
[시] 김광균 - 설야(雪夜)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1938년 1월 조선일보의 신춘 문예 당선작이다. 시의 경향은 서정적이며 영상적인 이 작품은 6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로 주지적 경향보다는 낭만적 경향이 짙고, 영상적 수법에다 관능적 표현을 가미하여 눈의 이미지를 한층 아름답게 부각시키고.. 2016.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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