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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3

[시] 조지훈 - 봉황수(鳳凰愁)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登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1940년 '문장' 2월호 13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연으로 짜여진 산문체의 서정시다. 이 시는 식민지 말기 고궁의 옥좌 밑을 거닐면서 왕조의 몰락을 회고하며 기 심회를 읊은 역.. 2017. 2. 20.
[시] 조지훈 - 고풍 의상(古風衣裳) 고풍 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회장을 받친 회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 2017. 2. 20.
[시] 시토름 - 해안 해 안 갈매기가 지금 개펄에 날아가고 저녁 놀의 빛깔이 더욱 짙어진다. 썰물진 물웅덩이에 해거름의 황혼이 비치고 있다. 잿빛 새가 수면을 스치면서 날아간다. 안개 낀 바다에 섬 그림자가 꿈처럼 떠오른다. 썰물진 개펄의 흙탁이 이상한 소리로 중얼거리고 쓸쓸한 새의 울음소리- 아아, 어느날이나 이러했었다. 다시금 바람이 살랑거리더니 잠시 뒤 그것마저 사라져 버렸다. 바다 한가운데 표류하는 어떤 소리가 들려 온다. 시토름(Theodor Storm, 1817~1888) 독일의 서정시인, 소설가. 그의 시는 북방인다운 과묵함과 소박하고 온화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넘치는 점감을 내포하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다. 201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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