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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훈3

[시] 조지훈 - 봉황수(鳳凰愁)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登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1940년 '문장' 2월호 13호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연으로 짜여진 산문체의 서정시다. 이 시는 식민지 말기 고궁의 옥좌 밑을 거닐면서 왕조의 몰락을 회고하며 기 심회를 읊은 역.. 2017. 2. 20.
[시] 조지훈 - 승무(僧舞)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1939년 12월 '문장'에 발표된 이 작품은 9연으로.. 2017. 2. 20.
[시] 조지훈 - 고풍 의상(古風衣裳) 고풍 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附椽) 끝 풍경(風磬)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회장을 받친 회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 내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인 양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 201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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