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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김동명 - 진주만

by 소행성3B17 2016.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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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아득히 감람(紺藍) 물결 위에 뜬

한 포기 수련화.



아름다운 꽃잎 속속들이

동방 역사의 새 아침 깃들여······



그대의 발길에 휘감기는 것은 물결이냐, 또한 그리움이냐,

꿈은 정사(征邪)의 기폭(旗幅)에 싸여 진주인 양 빛난다.



아득한 수평선으로 달리는 눈동자

거만한 여왕같이 담은 입술에도



그대의 머리카락 가락에도

태풍은 머물러······



때로 지그시 눈을 감으나,

그것은 설레는 가슴의 드높은 가락이어니.



알뜰히도 못잊는 꿈이기에 그대는

더 화려한 구슬로 목걸이를 만들고 싶었구나.



그러나 '때'는 그대의 사치스런 환상 위에

언제까지나 미소만을 던지지는 않았다.



드디어 운명의 날은

1941년도 다 저물어 12월 8일.



아하, 이 어찐 폭음이뇨, 요란한 푹음 소리!

듣느냐, 저 장쾌한 세기의 멜로디를!



저 푸른 물결 위엔 어느새 찬란한 불길이 오른다.

비빈 눈으로 바라보기에도 얼마나 황홀한 광경이냐!



그러나 노크도 없이 달려든 무례한 방문이기에

연달아 용솟음치는 불기둥에 어키는 분노는······



흑연(黑煙)을 뚫고 치솟는 분노 속에 세기의 광명이 번득거려

아아, 장엄한 역사의 전야! 태풍은 드디어 터지도다!










※ 제 5시집 '진주만'의 표제가 된 자유시로, 이 시집의 발간으로 아시아 자유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의 배경은 태평양 전쟁을 유발시킨 유명한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것이다.

 이 시와 '삼팔선' 등에서는 사회 현실에 참여하여 시대 고발에 앞장섰던 시인 자신의 기질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시정과 어울린 선명한 고발 정신은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할 수 있으나 예술적 안목에서 보면 반드시 성공한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심이 간다. 주제는 '세기적 진주만'의 모습이라 하겠다.






김동명(金東鳴 1900~1968)

 호는 초허(超虛). 강원도 강릉 출생. 함흥 영생 중학 및 도쿄 아오야마 신학교 졸업. 1923년 '개벽' 10월호에 프랑스의 세기말 시인 보들레르에게 바치는 시 '당신이 만약 내게 문을 열어 주시면', '나는 보고 섰느라', '애닲은 기억' 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데뷔함. 해방 후에는 다급한 현실과 정치·사회적인 풍자와 관념성으로 기울어져 마침내 정치 평론을 쓰기에 이름. 이화여대 교수, 초대 참의원 의원을 역임. 1954년 시집 '진주만'으로 아시아 자유 문학상을 수상함. 시집에 '나의 거문고(1930)', '삼팔선(1947)', '진주만(1954)', '하늘(1948)', '내 마음은(1964)' 외에 수필집고 정치 평론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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