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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이상화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by 소행성3B17 2016.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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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는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기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말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은 빼앗겨 보조차 빼앗기겠네.








※ 1926년 6월 '개벽'지에 발표된 이 시는 그때의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3.1운동이 좌절된 암흑기였다. 또 이 작가는 '백조'의 동인으로 출발했으니, 낭만과 상징에 데카당이 주조였던 '백조' 동인들의 조류로 볼 대 작가도 이 조류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이 시에는 그의 조국을 아끼는 마음과 일제에 조국을 빼앗긴 슬픔과 울분이 넘치고 있다.

 '지금은 빼앗긴 남의 땅'에서 이 시의 전체적인 무게를 우리는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이 시야말로 이상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의 주제는 망국에의 설움 또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울분과 한이라 하겠다.







이상화(李相和 1901~1943)

 호는 상화(尙火, 想華), 또는 무량(無量)·백아(白啞). 경북 대구 출생. 겅성중앙학교 3년 수료. 1922년 '백조' 동인이 되어 시 '말세의 희탄(1922)', '단조(單調)', '가을의 풍경(1922)', '나의 침실로(1923)', '이중사망(1923)' 등을 발표함. 도쿄, 아테네, 프랑스에서 불어 및 불문학을 공부. 귀국 후 2년 동안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개벽'을 중심으로 작품을 발표함. 1927년 대구에 끌여 왔으나 수차에 걸쳐 가택 수색을 당했고, 이어 의열단(義烈團)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 이후 수차의 옥고를 겪었으며 위암으로 사망함. 유고시 16편이 백기만에 의해서 시집 '상화와 고월(1956)'에 수록됨. 대구 달성공원에서 비가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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