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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이육사 - 황혼

by 소행성3B17 2016.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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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혼(黃昏)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5연으로 짜여진 이 시는 약육강식과 우승 열패의 생물학적 원리에만 지나치게 사로잡혀 각박하기만한 인간 사회에 대한 하나의 반항 정신으로서 인간 애정을 표현한 것이 이 시의 내용이며 주제는 인간이 갖는 인간애의 정신이라 하겠다.



  이육사 (李陸史 1904~1944)

  본명은 원록(原祿). 통명(通名)은 활(活). 경북 안동 출생. 북경군과 학교를 거쳐, 북경 대학 사회학과 졸업. 귀국 후 최초의 '황혼'을 '신조선(1933)'에 발표하여 문다에 데뷔. 이어 신헉호, 윤공강 등과 '자오선' 동인으로 34편의 시를 남겼음. 21세 때 형 원기, 아우 원유와 함께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의사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형제들과 함께 3년간 옥고를 치름. 그 때 감방 번호가 264호였으므로, 호를 육사(陸史)로 불렀음. 이후 대소사건이 있을 때마다 투옥되길 무려 17회, 끝내 북경에서 병졸함. 유고 시집에 '육사시집'이 간행되었고 다시 '청포도(1964)', '광야(1971)' 등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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