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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바이런 - 시용성(城)

by 소행성3B17 2017.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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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용 성 (城)




  사슬 벗은 마음의 영원한 정신

  자유여, 너는 지하 감방 속에서도 환하여라.

  그 곳에서 내가 살 곳은 그 열정이니

  네게 대한 사랑만이 속박할 수 있는 그 열정이라.


  자유여, 네 자손들이 족쇄에 채워지고

  족쇄에 묶여 축축한 지하 감방 햇빛 없는 어둠 속에 갇힐 때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순국으로 승리를 얻고

  자유의 명성은 사해에 떨쳐진다.


  시용이여, 너의 감옥은 거룩한 곳이요.

  너의 슬픔 어린 돌바닥은 하나의 제단이라.

  보니바르의 발자국은 너의 싸느다란 돌바닥을

  마치 잔디밭인 양 걸어 자국을 남겼구나.


  아무도 이 발자국을 지우지 말지어다!

  그것은 폭군에 항거하여 신에게 호소하도다.








  ※ 이 시에서 노래되고 있는 프랑소와 보니바르는 스위스의 애국자이며 자유의 투사로서, 폭군에 의하여 시용성에 오랫동안 감금되어 일이 있다. 이 짧은 시에서도 열정적인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1824)


  셀리, 키츠와 더불어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바이런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였으나 우아한 얼굴 모습과 뛰어난 시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열렬한 사랑을 하였다.

  남부 유럽과 근동을 여행하여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를 써서 혁신적인 정견을 발표하기도 했고, 질투와 일신상의 문제도 생기게 되자, 런던 사교계는 바이런에 대해 차갑게 대했다.

  결국 그는 1816년에 영국을 떠나게 되었고 그 뒤로 두번 다시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걸작을 발표하였다.

  바이런은 1823년에 그리스 독립 의용군에 참가하였고, 다음 해에 열병 때문에 미솔롱기에서 다감한 생애를 마쳤다. 의용군은 바이런의 나이와 같은 36발의 예포로 이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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