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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퍼시 비시 셸리 - 비탄 (A Lament)

by 소행성3B17 2017.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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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탄  (A Lament)



  오 세계여! 오 인생이여! 오 시간이여!

  나는 네 마지막 계단에 기어 올라와

  내가 전에 서 있던 곳을 보고 전율을 느낀다.

  젊은 날의 네 영광은 언제 다시 돌아오려는가?

  다시는 - 오, 다시는 오지 못하리!


  해낮과 밤으로부터

  기쁨은 도망쳐 버리고

  신선한 봄이나 그리고 여름이나 서리 어린 겨울은

  내 가냘픈 마음을 슬픔게도 할지라도 기쁘게는

  다시는 - 오! 다시는 하지 못하리!






  A Lament


  O world! O life! O time! 

  On whose last steps I climb, 

  Trembling at that where I had stood before; 

  When will return the glory of your prime? 

  No more—Oh, never more! 


  Out of the day and night 

  A joy has taken flight; 

  Fresh spring, and summer, and winter hoar, 

  Move my faint heart with grief, but with delight 

  No more—Oh, never more! 









  ※ 격정의 시인 셸리가 죽기 2년 전에 쓴 작품으로서, 그가 죽은지 2년 뒤에 발표 되었다. 그는 보트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폭풍을 만나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시체는 7주일 뒤에 물결이 실어 날랐고, 거기서 화장되어 로마에 있는 키츠의 무덤 옆에 묻혔다.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 1792~1822)


  퍼시 비시 셸리는 1811년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에 '무신론자의 옹호'라는 팜플렛을 간행하여 퇴학 처분을 당했고, 그 해에 열여섯 살의 소녀 해리에트에웨스트브록과 경솔한 결혼을 했다.

  결국 그 결혼은 살패로 끝나고 말아 해리에트는 자살하고 셀리는 무신론자이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는 윌리엄 고드윈의 딸 마리와 재혼하게 되었다.

  바이런과 친교를 맺저 함께 스위스에 머물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에 가 살며, 에스테, 베니스, 로마, 피사 등지를 오락가락하며 자유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는 스페티아 만에 위치한 레리치에 주거를 정하고, 레그혼에 사는 시인 리헌트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애용하던 요트 에어리엘 호가 폭풍을 만나 전복하게 되어, 1822년 7월 8일 30세의 나이로 죽었다.

  작품으로는 '알라스터', '지적미의 찬가', '회교도의 반역', '헬라스', 극시 '자유의 몸이 된 프로메테우스', '첸치 일가', '서풍에게', '종달이에게'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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