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천명3

[시] 노천명 - 남사당 남 사 당 나는 얼굴에 분(粉)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이 시는 1953년에 발간된 '별을 쳐다보며'에 수록된 작품으로, 4연으로 짜여진 자유시인데 연과 연의 구분이 자.. 2016. 12. 2.
[시] 노천명 - 푸른 오월 푸른 오월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 2016. 12. 2.
[시] 노천명 - 사슴 사 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사슴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이 시는 1939년에 발간된 첫시집 '산호림'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감상적, 서정적이며 2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 이입의 수법을 쓰고,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서정의 청아한 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의 주제는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에 대한 향수라 할 수도 있으며, 사슴을 노래한 시라고 본다면 사슴의 고고미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가 하면 작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대상인 사슴에다 감정 이입을 시켜 고고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2016. 12. 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