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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노천명 - 사슴

by 소행성3B17 2016.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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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사슴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이 시는 1939년에 발간된 첫시집 '산호림'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감상적, 서정적이며 2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 이입의 수법을 쓰고,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서정의 청아한 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의 주제는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에 대한 향수라 할 수도 있으며, 사슴을 노래한 시라고 본다면 사슴의 고고미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가 하면 작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대상인 사슴에다 감정 이입을 시켜 고고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한다.



  노천명(盧天命 1912 ~ 1957)

  여류 시임. 황해도 장연(長淵) 출생. 본관은 풍천, 초명은 기선(基善). 6세 때 홍역으로 사겨을 넘기고 천명(天命)으로 개명(改名).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1935년을 전후하여 '시원' 동인으로 데뷔, 한때 중외일보 학예부 기자, 잡지 '여성'의 기자로 있었고, 극예술 연구회의 신극 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보성전문교수 김광진과 알게 되었으나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이후 독신으로 생을 마쳤다.

  시집에 '산호림(1938)', '별을 쳐다보며(1953)', '사슴의 노래(1958)' 등이 있고, 수필집 '산딸기(1948)', 소설 '사월이(1939)' 등이 있다.



  친일행적

  태평양 전쟁 중인 1942년 친일문화단체인 조선문인협회에 가입하여 전쟁을 찬양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선동하는 시를 발표하였다. 

    노천명의 비정치적 채취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변해서 후에는 철저한 정치적 친일 선동에 앞장섰다. 그러므로 그녀의 문학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친일 행위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또 그 친일 행위도 단순히 한 두 시를 발표한 것이 아닌 수 많은 친일 시와 글을 지속적으로, 그것도 한국 젊은이들을 징병과 징용에 적극적으로 밀어 넣은 매우 질이 나쁜 것임을 봤을 때 소극적 친일파로 볼 수도 없다. 한편 노천명, 모윤숙, 최정희 3인방은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같은 시기에 친일파로 변절하기도 했다.

  노천명의 친일 행위가 얼마나 확실한지는 유종호 문학평론가가 '시인세계' 에서 '마지못한 친일까지 중죄인 취급은 가혹'하다고 주장하면서도,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에서 거론하는 28명의 문인 중 시인으로는 김동환, 김소운, 김안서, 김용제, 김종한, 노천명, 모윤숙, 주요한 등 8명이다. 이중 김동환과 노천명을 제외하면 교과서에 올릴 만한 작품이 별로 없다.'고 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즉 김동환과 노천명은 친일 시인 중 선별적으로 구제론을 펼치는 사람까지도 등을 돌릴 정도의 명백한 친일을 한 것이다. 결국 교과서와 수능에서 계속 나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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