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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5

[시] 박두진 - 하늘 하 늘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빛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시집 '해'에 수록된 7연으로 짜여진 작품이다. 하늘과 내가 합쳐지는 순미의 세계에 젖어 콧노래라도 부르듯이 순수하고도 소박한 이 시의 주제는 신비로운 자연과의 합일이라 하겠다. 박두진 (朴斗鎭 1916~1998) 시인. 아호는 해산. 경기도 안산 태생.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시인으로 시단에 등장. 그의 초기 시는 자연과의 친화, 교감이 주류가 되어 있.. 2017. 2. 7.
[시] 박두진 - 해 해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 2017. 2. 7.
[시] 박두진 - 도봉 도봉 산(山)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듯, 홀로 앉은 가을 산(山)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山)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 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생(生)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1946년 3인 시집 '청록집'에 실린 작품으로 10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며, 시의 경향은 종교적, 서정적이며 시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어둡고 쓸슬하여 마치 중국의 옛 시인 유종원의 '강설'을 연상시킨다. 이 시의 주제는 가을날 저녁의 우수이다... 2017. 2. 7.
[신] 박두진 - 향현 향현 아랫도리 다박솔 갈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엇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 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오릴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 ※ 이 시는 묘지송과 함께 발표된 첫회의 추천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은 일제 말기의 심.. 2017. 2. 7.
[시] 박두진 - 묘지송 묘지송 북망(北邙)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累)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1939년 '문장' 6월호 5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4연의 자유시로 산문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묘지가 가지고 잇는 일반적 통념을 뒤엎고 시의 질적 차원을 새로이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주제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찬미라 하겠다. 박두진 (朴斗鎭 1916~1998) 시인. 아호는 해산. 경기도 안산 태생.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시인으로 .. 2017.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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