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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오상순 - 한 잔 술

by 소행성3B17 2016.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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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술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곁에 앉힌 술단지

그럴 법 허이,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래 보내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이거 어인 일,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도 없거니

삼산유곡 옥천(玉泉)샘에

흠을 대었나,

지하 천척 수맥(水脈)에

줄기를 쳤나

바다를 말릴망정

이 술 단지사,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좋기도 허이,

수양이 말이 없고

달이 둥근데,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채우는 마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길가에 피는 꽃아

설어를 말어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한 잔 더 치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한 잔이 한 잔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석잔이 한 잔

한 잔 한 없이



한 없는 잔이언만

한 잔이 차네.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섧기도 허이,

속 깊은 이 한 잔을

누구와 마셔,

동해바다 다 켜도

시원치 않을

끝없는 나그네길

한(恨) 깊은 설움,

꿈인양 달래 보는

하염 없는 잔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 이 시의 경향은 퇴폐적, 낭만적이며 5연으로 구성된 자유시이다.

 표현상의 특징르로는 7·5조의 외형률을 취하고 있으며 연이 끝날 때마나다 '멀기도 허이'를 반복하여 토속적인 친근감을 준다.

 이 작가이 시는 어느 시에서나 허무주의 사상을 밑바닥에 깊이 깔고 있지만 '허무주의' 그 자체는 아니다. 자신의 '허무의식'을 또 다른 '관념의 세계'에서 긍정적으로 차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는 허무적 인간애이다.







오상순(吳相淳 1894 ~ 1963)

 호는 공초(空超). 서울 출생, 경신 학교를 거쳐, 19세 때 도일하여 도시샤(同志社)대학 종교 철학과 졸업. 1920년 '폐허' 동인이 되고, 조선 중앙불교학림 보원, 보성고보 영어 교사를 거쳐 동래 범어사(梵魚寺)에 입산, 이후 독신, 방랑, 참선, 애연(愛煙) 생활로 일관했음. 대한민국 예술원상(1956), 서울시 문화상(1962) 등을 각각 수상함. '방랑의 마음(1923)', '허무혼의 선언(1923)', '폐허행(1924)', '한잔술(1949)', 에세이에 '시대고와 희생(1920)' 등이 있으며, 시집은 작고한 뒤 발간된 '공초 오상순 시집(196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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