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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조병화 - 비는 내리는데

by 소행성3B17 2017.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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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는 내리는데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그대로 어둠이 되는 미도파 앞을 비는 내리는데

  서울 시민들의 머리 위를 비는 내리는데

 

  비에 젖은 그리운 얼굴들이

  서울의 추녀 아래로 비를 멈추는데

  진종일을 후줄근히 내 마음은 젖어내리는데

 

  넓은 유리창으로 층층이 비는 흘러내리는데

  아스팔트로 네거리로 빗물이 흘러내리는데

  그대로 발들을 멈춘 채 밤은 내리는데

 

  내 마음 속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내 마음 밖으로 내 마음 흘러내리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막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가난한 방에 가난한 침대 위에

  가난한 시인의 애인아.... 어두운 창을 닫고

  쓸쓸한 인생을 그대로 비는 내리는데

 

  아무런 기쁨도 없이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데

  하루가 오고 진종일을 비는 내리는데

  비에 막혀 미도파 앞에 발을 멈춘 채 내 마음에 밤은 내리는데






  ※ 이 시인의 시집에 '하루만의 위안'이란 표제가 말해 주듯 시에는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이 시인은 있는 그대로 그린 생활시를 많이 쓴다. 이 시 역시 그런 종류의 시로, 시의 경향은 낭만적, 서정적이며 5연으로 된 자유시다.

  수사적 표현을 구태여 쓰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그저 감상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는 것이 이 시 표현의 특징이다. 다분히 산문적이면서도 언어의 내재율을 살라고 잇는 이 시의 내용은 가난한 시인이 가난한 애인을 생각하는 인간의 우수를 그리고 있다. 주제는 비오는 날 도시인의 감상이라 하겠다.




    조병화 (趙病華 1921~2003)

  호는 편운(片雲). 경기도 안성 출생. 1938년 경성사범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의 고등사범에서 물리, 화학을 공부함. 광복 후 중앙대, 이대 강사를 거쳐 경희대 교수, 인하대 부총장을 역임.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1919)'을 간행한 이후,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국제 펜클럽 주체 세계 작가 대회 등 프랑크푸르트 대회, 뉴옥 대회 등에 참석했음. 시집에 '버리고 싶은 유산', '하루만의 위안(1950)', '패각의 침실(1952)', '인간고도(1954)', '사랑이 가기전에(1955)', '서울(1957)', '석아화(1958)', '기다리는 사람들(1959)', '밤의 이야기(1961)', '낮은 목소리(1962)', '공존의 이유(1963)', '쓸개 포도의 비가(1963)', '인간 숙소를 더듬어서(1964)', '내일 어느 자리에서(1965)', '가을은 남은 거에(1966)', '가숙의 램프(1967)', '내 고향 먼 곳에(1969)', '어머니(1973)'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자를 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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