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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이백 -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by 소행성3B17 201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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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



  봉황대 위에 봉황새 노닐었으나

  봉황새 사라지고 강물만 흘러가네.

  옛 궁궐 터의 화초는 쓸쓸한 길에 묻혔고

  진 나라의 고관들도 땅 속에 묻혔네.

  삼산의 두 갈래는 백로주로 나뉘었네.

  장안을 바라보니 뜬 구름이 해를 가려.

  장안은 안 보이고 근심 어리게 하네.



  鳳凰臺上鳳凰遊 (봉황대상봉황유)

  鳳去臺空江自流 (봉거대공강자류)

  吳宮花草埋幽徑 (오궁화초매유경)

  晉代衣冠成古丘 (진대의관성고구)

  三山般落靑天外 (삼산반락청천외)

  二水中分白露州 (이수중분백로주)

  總爲浮雲能蔽日 (총위부운능폐일)

  長安不見使人愁 (장안불견사인수)





  ※ 이 시는 이백이 간신인 고역사 일당들의 참언에 의해 양귀비의 비위를 상하게 되어 벼슬에서 쫓겨난 시절의 작품. 시인 최시자와 더불어 금릉에 이르러 황폐해진 봉황대에 올라가 읊은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노래하며 아울러 자신의 불우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백 (李白 701~761)

  이백은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중국 시인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굴원, 도연명 이후의 위대한 시인으로서, 그의 친구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시의 황금기의 당시(唐詩)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태백이 노던 달아'의 동요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친근한 이백은 중국에서는 물론 동양의 시인으로서는 드물게 서양에세도 널리 소개되고 인기도 높다. 그의 시는 많은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백은 가히 세계적인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백의 작품에 있어 최대의 특색은 그 웅휘한 기상에 있다. 이것은 그의 천재와 그의 개성에 말미암은 것이다. 그는 작시에 있어 자잘한 수기어에 얽매이지 않았고 대구를 억지로 맟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장시건 단시건 마치 조금도 힘을 안 들이고 애도 안 쓰며 그냥 아무렇게나 적어내려간 것 같지만, 그것은 그의 인상과 감정을 정확하고 훌륭히 표현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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