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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시] 보들레르 - 죽음의 기쁨

by 소행성3B17 201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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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기쁨




  달팽이 기어다니는 진흑 당에

  내 손수 깊은 구덩이를 파리라.

  거기 내 늙은 뼈를 편히 쉬게 묻어

  물 속의 상어처럼 망각 속에 잠들리라.


  나는 유서를 꺼리고 무덤을 미워한다.

  죽어 부질없이 남의 눈물을 바라느니보다

  내 차라리 산채로 까마귀를 불러

  더러운 뼈 마디를 쪼아먹게 하리라.


  오, 구더기! 눈도 귀도 없는 어둠의 빛이여.

  너 위해 부패의 아들, 방탕의 철학자.

  기뻐할 불량배의 사자는 오도다.


  내 송장에 주저 말고 파고 들어

  죽음 속에 죽은, 넋없는 썩은 살 속에서

  구더기여, 내게 물어라. 여태 괴로움이 남아 잇는가고.




  ※ 세기말의 이른바 데카당들은 "영혼의 고뇌"를 노래 했는데, 이 시는 그 중의 한 대표작이다. 이 시를 쓸 무렵의 작자는 "살아 있다는 것은 말뿐이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죽었을 뿐 아니라 넋조차 잃어버린 인간이다"라고 절망적인 말을 하였다.






  보들레르( Pierre Charles Baudelaire, 1821~1867)

  보들레르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부친이 죽고, 젊은 모친이 재혼하는 아픔을 맛보았다.

  중학 졸업 후, 의부의 희망을 배반하고 문학을 지망, 방종한 생활에 젖었으므로 노여움을 사 1841년에 남해로 여행을 떠났다.

  1857년에 처음이요 마지막 시집인 '악의 꽃'을 출판했는데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벌금이 과해졌다. 그후로는 병과 빚에 시달리는 생활에 쫓기다가 비참한 일생을 마쳤다.

  위고는 그를 '프랑스 시에 새로운 공포를 도입한 시인'이라고 불렀거니와, 이것은 그의 신비적인 종교성, 통렬한 비평정신, 파리에서 쾌락을 구할 때의 그의 이상적인 후각, 미각 촉각을 한마디로 갈파한 평이라 하겠다.

  문학사상 보들레르의 지위는 '악의 꽃' 한 권으로 산문에서의 플로베르와 비견되며, 또 베를렌, 말라르메와 더불어 19세기 3대 서정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 영향이 상징주의를 거쳐 현대시에 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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