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이 시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수록된 작품으로 1941년 11월 5일로 부기되어 있다. 일부는 산문의 형식을 빌려 쓴 10연으로 된 자유시다. 시의 경향은 서정적, 낭만적, 애국적이며, 주제는 아름다운 이상에의 동경, 또는 조국 광복에의 염원이라 하겠다.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아명(兒名)은 해환(海換). 북간도 동명촌 출생. 연희 전문학교 문과 졸업. 일본 리쿄오 대학 및 도오지사 대학에서 영문학 수학. 1943년 하기 방학의 귀국직전 독립 운동가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29세로 옥사. 중학 재학시 간도 연길에서 발행했던 '카톨릭 소년'에 수 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일직이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음. 그가 죽은 후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발간되었으며,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센 - 배 (0) | 2015.04.27 |
---|---|
[시] 브라우닝 -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0) | 2015.04.27 |
[시] 프로스트 - 겨울날 해질녘에 새를 찾으며 (0) | 2015.04.27 |
장석주 - 대추 한 알 (0) | 2015.04.27 |
텅빈 충만 (0) | 2015.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