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348 [시] 김광균 - 설야(雪夜) 설야(雪夜) 어느 머언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 눈이 나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1938년 1월 조선일보의 신춘 문예 당선작이다. 시의 경향은 서정적이며 영상적인 이 작품은 6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로 주지적 경향보다는 낭만적 경향이 짙고, 영상적 수법에다 관능적 표현을 가미하여 눈의 이미지를 한층 아름답게 부각시키고.. 2016. 12. 15. [시] 민춘지 - 산수유 산수유 봄의 숨결에 햇살이 웃고 노란 꽃망울 웃음 터뜨린다 꽃 중에도 꽃잎이 제일 작은 너가 명이 길어 녹음이 지는 여름날에는 숲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더니 서리 햇살을 얼마나 먹었는지 빨갛게 익은 보석 칼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점등으로 불을 밝히네 2016. 12. 12. [시] 김현승 - 플라타너스 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 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누린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 이 작품은 1953년 '문예' 초하호에 발표되었다가 '김현승 시초'에 다시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서정적이며 5연으로 자유시다. 이 시는 사물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려는 경향.. 2016. 12. 12. [시] 김현승 -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그의 첫시집 '김현승 시초'에 수록된 이 작품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3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모든 것의 종언을 고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시로 엄숙하고 경건한 시풍을 보이고 있다. 가을의 쓸쓸하고 공허함 속에서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이 시의 주제는 경건한 생의 가치 추구이다. 김현승(金顯承 1913.. 2016. 12. 12. [시] 김현승 - 눈물 눈 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이 시는 6.26 사변 때 목포시의 후원을 얻어 출간된 계간 잡지 '시문학' 창간호에 실렸다가 1957년 발간된 '김현승 시초'에서 다시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서정적, 상징적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간결한 언어로 시상을 압축하였고, 비유적 수법을 쓰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것은 오직 신 앞에 흘리는 눈물뿐이라는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2016. 12. 12. [시] 노천명 - 남사당 남 사 당 나는 얼굴에 분(粉)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이 시는 1953년에 발간된 '별을 쳐다보며'에 수록된 작품으로, 4연으로 짜여진 자유시인데 연과 연의 구분이 자.. 2016. 12. 2.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