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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동윤 - 초우(草雨) 초우(草雨) 하늘이 풀밭으로 내린다 풀은 하늘밭으로 내린다 풀은 높아지고 하늘은 낮아진다 2016. 11. 21.
[시] 신석정 - 슬픈 구도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 이 시는 1939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훗날 그의 시집 '슬픈목가'에 전재된 이 작품은 4연의 자유시로 일제의 치하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는 민족사의 시대적 상황은 이 목가시인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는 '촛불'의 세계에서 즐겨 부르던 '어머니'도 잃어버리고 암울한 절망 속에 빠져야만 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과거에 즐겨 쓰던 현란한 수식어도 보이지 않으며 예각적인 까칠한 서술이 전편을.. 2016. 11. 16.
[시] 신석정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 2016. 11. 16.
[시] 신석정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 2016. 11. 16.
[시] 김광섭 - 시인 시 인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노을에 가고 없다. ※ 1969년 5월 동아일보에 발표된 이 시는 시인을 노래한 4연으로 된 자유시다. 시인의 세계와 그 인생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우수한 이 시의 주제는 영원히 사는 시인의 일생.. 2016. 11. 10.
[시] 김광섭 - 생의 감각 생의 감각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1967년 '현대문학' 1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지은이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일주일간의 무의식 혼돈 세계에서 깨어난 그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감각'은 생에 대한 자각, 곧 생의 부활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에는.. 2016.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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