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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21

[시] 노천명 - 남사당 남 사 당 나는 얼굴에 분(粉)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이 시는 1953년에 발간된 '별을 쳐다보며'에 수록된 작품으로, 4연으로 짜여진 자유시인데 연과 연의 구분이 자.. 2016. 12. 2.
[시] 노천명 - 푸른 오월 푸른 오월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 2016. 12. 2.
[시] 노천명 - 사슴 사 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사슴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이 시는 1939년에 발간된 첫시집 '산호림'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감상적, 서정적이며 2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 이입의 수법을 쓰고,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서정의 청아한 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의 주제는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에 대한 향수라 할 수도 있으며, 사슴을 노래한 시라고 본다면 사슴의 고고미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가 하면 작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대상인 사슴에다 감정 이입을 시켜 고고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2016. 12. 2.
[시] 모윤숙 - 이 생명은 이 생명은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라시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 더미로 옛집 채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깊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 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임의 원이라면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다.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 조국을 여인에 비유하였다. 즉, 조국을 의인화하여 개인이 개인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듯 시 전체를 한의 비유로 노래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며, 단순히 개인의 굳은 애정을 노래하였다고.. 2016. 12. 1.
[시] 모윤숙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 높은 잔물 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가 엄마 찾아 날아들면 어머니는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산위 조그만 성당 안에 촛불을 켠다. 바람이 성서를 날릴 때 그리로 들리는 병사의 발자국 소리들! 아들은 어느 산맥을 넘나 보다. 쌓인 눈길을 헤엄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적의 땅에 달리고 있나 보다 애달픈 어머니의 뜨거운 눈엔 피 흘리는 아들의 십자가가 보인다. 주여!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 이 시 역시 '풍랑'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전선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간절한 염원을 노래한 일종의 애국시다. 정에 약하고 맹목적인 사랑의 모상이 아니라, 조국애 · 민족애 등 대아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나타내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강인한 어머니의 사랑이라 하겠다... 2016. 12. 1.
[시] 모윤숙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해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머리엔 끼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 2016.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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