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520 자신의 발견 자신의 발견 자신의 위대성을 알면, 그 때 자부심, 자존심, 자신감이 싹틉니다. 자신에 대한 긍지를 잃어버리고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는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언제나 긍정적인 부분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발견에 가장 큰 도움이자, 가장 큰 영양분이 됩니다. 눈을 안으로 뜨고 자신을 발견해 보세요. 2016. 7. 3. 인생의 보배는 무엇인가요? 인생의 보배는 무엇인가요? 중국 송나라 때에 지방의 한 벼슬아치가 보석 감정인을 찾아 왔습니다."이 옥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 감정해 주시오."한참 동안 옥을 자세히 살펴보던 감정인이 말했습니다."이 옥은 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보석입니다." 사실 그가 옥을 감정한 이유는 송나라 재상 '자한'에게 청탁을 할 때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그 옥을 가지고 '자한'을 찾아가 말했습니다."세상에서 구하기 힘든 진귀한 옥입니다. 제가 보배로 여기며 지금까지 보관해 왔지만, 이제는 자한님께 바치고자 합니다." 그러나 평소 청렴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녔던 '자한'은이를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옥을 보배로 여기고 있으나,나는 탐내지 않는 마음을 귀한 보배로 여기고 있소.내가 .. 2016. 7. 3.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말 한마디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인 엄마,항상 가족을 위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오던 엄마입니다. 그날따라 더 분주한 저녁 식사 준비에식초병을 참기름병으로 착각하고 찌개에 넣고 만 것입니다.순간 아차 했지만,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아까운 마음에 그냥 식탁에 내놓았습니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중학생 큰딸이 찌개 맛을 보더니만 잔뜩 찌푸리고는 말했습니다."엄마 찌개 맛이 이상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초등학생 둘째 딸이 기다렸다는 듯,"이게 뭐야. 이걸 대체 어떻게 먹어요?"라며 불평을 쏟아냈습니다.엄마는 자식들의 불평에 미안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셨습니다. 가만히 두 딸을 지켜보던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어디, 맛 좀 보자. 음..조금.. 2016. 7. 3. 말 한마디의 힘 말 한마디의 힘 1920년대, 뉴욕의 어느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가난한 한 노인이 '나는 시각 장애인입니다'라고 적힌 푯말을 앞에 놓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공원에서 구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 한두 명만 적선할 뿐그를 눈여겨보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또각 또각'한 남자의 구두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점점 다가옵니다.그리고는 시각 장애인 앞에 멈춰 섭니다.잠시 머물다가 자리를 떠나는 남자.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요?시각 장애인의 적선 통에 동전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생각을 바꾼 것일까요?푯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바뀌어 있었습니다.'봄이 곧 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봄을 볼 수 없답니다.(Spring is coming soon, but I can’t.. 2016. 7. 3. 자유의 씨앗 자유의 씨앗 흔히 자유롭지 않은 이유를 몸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은 몸이 아닌 마음이 묶여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몸은 원천적으로 그 특성상 부자유스러운 것이라서 진정한 자유는 마음이 자유로울 때 자유를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유의 씨앗은 심어져 있지만 가치를 발견하고 발아하기 위해서는 보드라운 잎이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자신의 한계와 굴레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필요합니다. 참자유를 마침내 만나게 되었을 때 그처럼 경이로운 일도 없습니다. 2016. 6. 28. 48년 만에 지킨 약속 48년 만에 지킨 약속 "좋은 나라에 살게 되면 꼭 불우이웃을 돕거라!"3.1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유공자' 故이찰수 선생님이 남긴 유언입니다. "우리는 대한 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기로 맹세한다."경남 밀양 용회동 장터에 의분을 토로하며 선언문을 내걸고"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이끌었던 아버지. 독립되고 6.25 전쟁을 치른 후, 세상이 발전을 거듭했습니다.아버님이 말씀하신 좋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독립유공자 자녀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이찰수 선생님의 셋째 딸 이도필 할머니(82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용직, 식당일, 빌딩 청소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모두 참으며,그렇게 5,000만 원을 모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 2016. 6. 28. 이전 1 ··· 76 77 78 79 80 81 82 ··· 8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