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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806

누나와 앵무새 누나와 앵무새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누워 계신지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쪽진 뒤 우리 남매를 불러 앉혔습니다. 마치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수야, 누나를 부탁한다. 네가 누나의 목소리가 돼줘야 해. 그럴 수 있지?" "엄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는 말 못하는 누나가 마음에 걸려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제 손을 꼭 잡고 당부하셨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 남매의 손을 하나로 맞잡고는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영영 떠나셨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게 되었으며, 저는 먼 친척의 도움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2015. 8. 4.
아빠하고 나하고 아빠하고 나하고 곤히 잠든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웠더니 놀랐는지 눈을 번쩍 뜬다. 당신의 팔을 베고 옆에 누운 사람이 딸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멀뚱멀뚱 그 큰 눈을 껌뻑이다가 그새 또 잠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허공으로 팔을 뻗어 '엄마 엄마' 하며 낮은 고함을 치는 아빠. 그런 아빠를 꼬옥 안아 '괜찮다 괜찮다' 하고 등을 토닥이면 애기처럼 스르륵 다시 잠이 든다. 나이 서른둘에 부모님께 반말이냐며 버릇없다지만 지금의 아빠에게 난, 예의 갖춘 딸이기 보다 친구가 되어야할 순간이 더 많다. 24시간을 아빠 곁에서 대답도 않는 아빠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운동하자며 힘 빠진 팔다리를 쭉쭉 잡아 흔들고 밥을 많이 먹으면 잘했다 칭찬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 이쁘다 박수를 쳐준다. 그 옛날 내가 꼬마일적.. 2015. 8. 4.
엄마, 내 신발은? 엄마, 내 신발은? 일곱 살 때쯤 일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막내인 저를 유난히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서 예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운동화를 신겨주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껴 신으렴" 그러나 전 엄청난 개구쟁이였기에 아무리 튼튼한 신발이라도 금발 닳아 구멍이 나버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아껴 신으란 말씀을 처음 하시며 사준 신발이기에 나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가구점을 친구들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가구점 앞에는 오래된 책상과 의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호기심 많고 개구쟁이인 저와 친구들이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죠. 우리는 의자 하나, 책상 하나 .. 2015. 8. 4.
사람을 바꾸는 말의 힘 사람을 바꾸는 말의 힘 고대 중국, 두 나라가 서로 싸웁니다. 가만히 보니 더 싸우다가는 두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양쪽 나라를 오가던 지혜로운 한 사람이 중재에 나서기로 합니다. 그 사람은 먼저 찾아간 나라의 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유해 말하건대 이 나라는 만월 같고 저 나라는 초승달 같습니다. 큰 나라가 돼서 조그마한 나라를 굳이 왜 치려 하십니까?" 듣자니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듣고 보니 그렇군. 그러면 그만두지 뭐..."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 갔습니다. "뭐라고? 그 나라는 만월이고 우리는 초승달이라고? 이 사람이 우리를 영 무시하는구먼!"하고 따지고 듭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만월은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초승달은 이제부터 커질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 2015. 7. 31.
[시] 보들레르 - 가을의 노래 가을의 노래 1우리 곧 싸늘한 어둠 속에 잠기리.잘 가거라, 너무도 짧은 여름의 강렬한 빛이여!벌써 돌바닥 뜰 위에 장작 내리는불길한 충격 소리 들려온다. 겨울은 온톤 내 가슴에 사무쳐 들리라.분노, 증오, 몸서리, 넌덜머리, 고역,그리하여 내 심장 북극지옥의 태양인 양,한갓 얼어붙은 덩어리가 되리라. 장작 소리마다 몸서리치며 귀기울이니,두들겨 세우는 사형대보다도 더 둔탁한 울림이여,내 정신 육중한 파벽기(破壁機)의 끊임없는 연타에와를 무너지는 탑과 같다. 단조로운 충격에 맞추어 어디에선가서둘러 관에 못질하는 듯...누구의 관인가?... 어제는 여름, 이제 가을인가!그 야릇한 소리 출발인 양 울린다. 2그대 지긋한 눈의 푸른빛이 좋아,달콤한 미녀여, 나 오늘은 일체가 쓰디써,그대 사랑도, 침실의 쾌락도,.. 2015. 7. 29.
풍성함은 부족함보다 오히려 잘못되는 수가 있다 풍성함은 부족함보다 오히려 잘못되는 수가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사계절 모두가 온화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12월~1월)에는 호주 전 지역이 우리나라 초여름 정도 되며 겨울(6월~8월)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니 사계절 모두 꽃이 필 수 있는 조건이 훌륭히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호주를 처음 밟은 유럽인들은 호주땅을 양봉으로 성공할 수 있는 천혜의 땅이라 믿고 서둘러 벌통을 유럽으로부터 옮겨 왔다고 한다. 첫 1년간 이주해 온 벌들은 유럽에서 거둘 수 있는 몇 배의 벌꿀을 생산해 냈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는 웬일인지 벌들이 꿀을 따러 나가지를 않는 것이다. 매일 빈둥거리며 벌 통속에서 놀기만 할 뿐 벌꿀의 생산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2015.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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