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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167

[시] 박두진 - 도봉 도봉 산(山)새도 날러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듯, 홀로 앉은 가을 산(山)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山)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 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생(生)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1946년 3인 시집 '청록집'에 실린 작품으로 10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며, 시의 경향은 종교적, 서정적이며 시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어둡고 쓸슬하여 마치 중국의 옛 시인 유종원의 '강설'을 연상시킨다. 이 시의 주제는 가을날 저녁의 우수이다... 2017. 2. 7.
[신] 박두진 - 향현 향현 아랫도리 다박솔 갈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엇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 골이 장송(長松) 들어섰고, 머루 다랫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갈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산들! 누거만년(累巨萬年)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 확 치밀어오릴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릿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 ※ 이 시는 묘지송과 함께 발표된 첫회의 추천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은 일제 말기의 심.. 2017. 2. 7.
[시] 박두진 - 묘지송 묘지송 북망(北邙)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觸累)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 1939년 '문장' 6월호 5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4연의 자유시로 산문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묘지가 가지고 잇는 일반적 통념을 뒤엎고 시의 질적 차원을 새로이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며, 그 주제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찬미라 하겠다. 박두진 (朴斗鎭 1916~1998) 시인. 아호는 해산. 경기도 안산 태생. 1939년 '문장'지의 추천 시인으로 .. 2017. 2. 6.
[시] 서정주 - 광화문 광화문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로부터 왼 몸에 사무쳐 오는 빛을마침내 버선코에서까지도 떠받들어야 할 마련이지만,왼 하늘에 넘쳐 흐르는 푸른 광명(光明)을광화문 - 저같이 의젓이 그 날갯죽지 위에 싣고 있는 자도 드물다. 상하 양층(上下兩層)의 지붕 위에그득히 그득히 고이는 하늘.위층엣 것은 드디어 치일치일 넘쳐라도 흐르지만,지붕과 지붕 사이에는 신방(新房) 같은 다락이 있어아랫층엣 것은 그리로 왼통 넘나들 마련이다. 옥(玉)같이 고우신 이그 다락에 하늘 모아사시라 함이렷다. 고개 숙여 성(.. 2017. 1. 26.
[시] 서정주 - 추천사 추천사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머언 바다로배를 내어 밀듯이,향단아. 이 다소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벼갯모에 놓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나를 밀어 올려 다오.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향단아. ※ 주정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경향의 이 시는 5연으로 구성된 자유시다. '춘향의 말'이란 부제가 붙은 이 시는 앞에서 본 '춘향 유문'에서와 같이 그 소재는 고전이다. 이 '추천사' 역시 대화체의 형식을 빌려 세속적 고뇌로부터 해방되기를 갈구하는 바람을 춘.. 2017. 1. 26.
[시] 서정주 - 귀촉도(歸蜀途)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三萬里).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三萬里).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 1943년 '춘추' 10월호 2호에 실린 이 작품은 그의 제2시집 '귀촉도(1946)'의 표제가 된 대표작이다. 귀촉도라는 새는 자규, 두견 등의 이름이 붙은 것으로 망국의 서러움을 애절한 여인상의 가락에 나타낸 비애절정의 시다. 시의 주제는 임을 잃은.. 2017.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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