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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167

[시]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에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네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교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저연 7행으로 된 산.. 2016. 9. 23.
[시] 한용운 - 님의 침묵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 같이 굳고 빛나는 옛 맹서는 차디찬 띠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도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대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런, 이별은 쓸데없는 누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 2016. 9. 22.
[시] 한용운 - 사랑 사랑 봄 물보다 깊으니라가을 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이대로 말하리. ※주제는 '절대자에게로 향하는 심오한 사랑'이며, 구성은 단수(單首)로 된 평시조이다. 이 시조의 특징은 "보다"라는 조사를 동원해 직유법을 시도함으로써 으미를 강조했으며, 수식어와 서술형 어미에 차이를 둠으로써 음률과 으미의 변화를 꾀한데 있다. 한용운(韓龍雲 1879 ~ 1944)호는 만해(萬海 · 卐海). 충남 홍성(洪城)출생. 18세 때 동학에 가담했으며, 3.1운동 때 미족 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 23세 때 입산하여 중이 됨. 1919년 옥중에서 쓴 '조선 독립의 서'는 후세 남긴 겨레의 대문장임. 저서에 '불교유신론(1990)', '불교 대전', '십현담주해'가 있고, 시집.. 2016. 9. 22.
[시] 이지혜 - 사랑에 빠지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순간 왔니. 고생했다.앞치마를 풀어헤치는 손 감기 걸린다. 방에서 자.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 조심히 가. 건강하고.작은 점이 될 때까지 흔드는 손. 내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후광이 비치지도꽃이 날리지도 않았다. (2015년 시민 공모작) 2016. 5. 31.
[시] 윤동주 - 별 헤는 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 2015.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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