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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167

[시] 김현승 - 가을의 기도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그의 첫시집 '김현승 시초'에 수록된 이 작품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3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모든 것의 종언을 고하는 가을을 맞이하여 내적 충실을 갈망하는 기도조의 시로 엄숙하고 경건한 시풍을 보이고 있다. 가을의 쓸쓸하고 공허함 속에서 생의 가치를 추구하고 열망하는 이 시의 주제는 경건한 생의 가치 추구이다. 김현승(金顯承 1913.. 2016. 12. 12.
[시] 김현승 - 눈물 눈 물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이 시는 6.26 사변 때 목포시의 후원을 얻어 출간된 계간 잡지 '시문학' 창간호에 실렸다가 1957년 발간된 '김현승 시초'에서 다시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서정적, 상징적이다.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간결한 언어로 시상을 압축하였고, 비유적 수법을 쓰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순수한 것은 오직 신 앞에 흘리는 눈물뿐이라는 의도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2016. 12. 12.
[시] 노천명 - 남사당 남 사 당 나는 얼굴에 분(粉)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布帳)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十分)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도구(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 이 시는 1953년에 발간된 '별을 쳐다보며'에 수록된 작품으로, 4연으로 짜여진 자유시인데 연과 연의 구분이 자.. 2016. 12. 2.
[시] 노천명 - 푸른 오월 푸른 오월 청자(靑瓷)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 냄새가 물큰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메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은 하.. 2016. 12. 2.
[시] 노천명 - 사슴 사 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사슴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이 시는 1939년에 발간된 첫시집 '산호림'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의 경향은 감상적, 서정적이며 2연으로 짜여진 자유시다. 사슴을 의인화하여 감정 이입의 수법을 쓰고,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서정의 청아한 면을 형상화한 이 작품의 주제는 잃어버린, 정신적 고향에 대한 향수라 할 수도 있으며, 사슴을 노래한 시라고 본다면 사슴의 고고미 정도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가 하면 작자는 자신의 자화상을 대상인 사슴에다 감정 이입을 시켜 고고한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고.. 2016. 12. 2.
[시] 모윤숙 -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기도 높은 잔물 지는 나뭇가지에 어린 새가 엄마 찾아 날아들면 어머니는 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산위 조그만 성당 안에 촛불을 켠다. 바람이 성서를 날릴 때 그리로 들리는 병사의 발자국 소리들! 아들은 어느 산맥을 넘나 보다. 쌓인 눈길을 헤엄쳐 폭풍의 채찍을 맞으며 적의 땅에 달리고 있나 보다 애달픈 어머니의 뜨거운 눈엔 피 흘리는 아들의 십자가가 보인다. 주여!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이기고 돌아오게 하소서. ※ 이 시 역시 '풍랑'에 실려 있는 작품으로, 전선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의 간절한 염원을 노래한 일종의 애국시다. 정에 약하고 맹목적인 사랑의 모상이 아니라, 조국애 · 민족애 등 대아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나타내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강인한 어머니의 사랑이라 하겠다... 2016.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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