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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167

[시] 모윤숙 -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산곡을 해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머리엔 끼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 2016. 12. 1.
[시] 김도형 - 봄, 그리고 봄, 그리고 봄, 다가올 것 같지도 않던 날들이 다가오고 지나갈 것 같지 않던 날들이 소리소문 없이 지나가는 봄. 안녕 가장 행복했던 혹은 가장 불행했던 바람곁에 너의 내음이 살포시 나 가슴을 흔들던 봄. 그리고 안녕 다가오지 않았으면도 했지만 모두 웃을수만 있을 것 같은 여름. 2016. 12. 1.
[시] 김형경 - 지우개 하나 갖고 싶다 지우개 하나 갖고 싶다 같은 책상에 앉아 가운데 금을 하나 그었다 팔꿈치라도 넘으면 쩔러대는 뾰족한 연필 팔꿈치는 휘파람 불며 금을 넘어 오가는 바람이 부럽다 흔적도 없이 금을 지울 지우개 하나 갖고 싶다. 2016. 12. 1.
[시] 유치환 - 일월 일 월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소냐. 머언 미개(未開)ㅅ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熱愛)하되 삼가 애련(哀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恥辱)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瞳孔)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즘생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에 또한 무슨 회한(悔恨)인들 남길소냐. ※ 이 시는 1939년 4월 '문장' 3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6연으로 짜여졌다. 이 시는 일제 말기의 불안정한 시대에 정의의 사회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는 초연하고도 늠름한 기상을 보인다. 그것이.. 2016. 11. 25.
[시] 유치환 - 바위 바 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먼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1947년 발간된 '생명의 서'에 수록된 작품으로 전연 12행의 자유시다. 다른 시인들의 시처럼 바위를 구상적으로 형상화한 거시 아니라 바위를 '허무의 의지'의 상징적 사물로 하여 자신의 허무의식을 바위와 같은 굳은 의지로 극복해 보겠다는 눈물겨운 다짐을 보인 이 시의 주제는 허무의식의 극복이라 하겠다. 유치환(柳致環 1908~1967) 호는 청마(靑馬). 경남 충무 출생. 동래고보.. 2016. 11. 25.
[시] 유치환 - 울릉도 울 릉 도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恆時)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 지은이의 제3 시집 '울릉도'의 표제가 된 작품이다. 시의 경향은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며, 짜임은 4연으로 된 자유시이다. .. 2016.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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