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167 [시] 유치환 - 깃발 깃 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닲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 이 시는 1939년 '조선문단'지에 발표된 청마의 대표작이다. 낭만적이며 이상적인 경향의 이 작품은 우선 깃발을 제대로 한 발상도 좋았으려니와, 표현상에서도 주도의 생략법을 취하면서 비약적 연락을 가지는 묘법을 썼고, 작가의 내명 세계가 압축된 언어와 은유로써 거의 완벽하게 표현되고 있다. 불과 9행의 짧은 시이지만 깃발이 가지는 이미지가 매우 선명하고도 계속적인 파동감으로 높이 승화된 이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영원한 향수가 아닌가 .. 2016. 11. 25. [시] 방자경 - 자비 그림 조병완(동양화가) 자비 자비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상대방이 존재하기에 베풀 수 있는 것과 같이 대상이 없는 자비는 없습니다. 어떤 일을 행함에 내가 먼저 있으면 자비라 할 수 없습니다. Compassion Compassion arises because of the other, not because of me. I can have compassion because the other exists. It does not arise without an object. If the sense of "I" arises first in doing something, it cannot be called compassion. 2016. 11. 22. [시] 한기옥 - 지는 꽃을 보며 지는 꽃을 보며 목련꽃이 진다 살구꽃 복사꽃 앵두꽃이 지면서 아름답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이 어렵다 망설이며 옷섶 여미는데 어제보다 오늘이 쉬워지는 시간을 사는 목숨처럼 어렵사리 살아낸 생은 없노라고 눈부신 생의 절정을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내려 놓는다. 2016. 11. 21. [시] 이동윤 - 초우(草雨) 초우(草雨) 하늘이 풀밭으로 내린다 풀은 하늘밭으로 내린다 풀은 높아지고 하늘은 낮아진다 2016. 11. 21. [시] 신석정 - 슬픈 구도 슬픈 구도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요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하늘 별이드뇨. ※ 이 시는 1939년 '조광'지 10월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훗날 그의 시집 '슬픈목가'에 전재된 이 작품은 4연의 자유시로 일제의 치하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는 민족사의 시대적 상황은 이 목가시인에게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는 '촛불'의 세계에서 즐겨 부르던 '어머니'도 잃어버리고 암울한 절망 속에 빠져야만 했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과거에 즐겨 쓰던 현란한 수식어도 보이지 않으며 예각적인 까칠한 서술이 전편을.. 2016. 11. 16. [시] 신석정 -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안개가 자욱히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욱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뚝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 2016. 11. 16.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2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