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167 [시] 신석정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 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 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 2016. 11. 16. [시] 김광섭 - 시인 시 인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노을에 가고 없다. ※ 1969년 5월 동아일보에 발표된 이 시는 시인을 노래한 4연으로 된 자유시다. 시인의 세계와 그 인생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우수한 이 시의 주제는 영원히 사는 시인의 일생.. 2016. 11. 10. [시] 김광섭 - 생의 감각 생의 감각 여명의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는 것이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 깨진 그 하늘이 아물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르런 빛은 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1967년 '현대문학' 1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지은이가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일주일간의 무의식 혼돈 세계에서 깨어난 그 체험을 구상화한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감각'은 생에 대한 자각, 곧 생의 부활을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에는.. 2016. 11. 10. [시] 김광섭 -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 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2016. 11. 10. [시] 이육사 - 황혼 황 혼(黃昏)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 2016. 11. 7. [시] 이육사 - 절정 절 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끓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유고 시집에 실려 있는 이 시 역시 배경은 중국 대륙이다. 이 대륙을 무대로 하여 극한 상황에 이른 조국의 현실을 개탄하고 스스로 자신의 절망적 감정을 표출한 이 시는 표현상에서 기 · 승 · 전 · 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상징적 표현 수법으로 주제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데 주제는 일제하의 극한 상황이다. 이육사 (李陸史 1904~1944) 본명은 원록(原祿). 통명(通名)은 활(活). 경북 안동 출생. 북경군과 학교를 거쳐, 북경 대학 사회학과 .. 2016. 11. 7.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28 다음 반응형